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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

by 초롱초롱 2020. 5. 15.

1. 독립운동가 유관순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고 할 때, 일제 강점기 시절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인물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관순열사를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퍼진 대한독립 만세 소리.

그리고 그해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 퍼진 만세 소리.

 

오늘은 유관순 열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2. 열사, 의사, 지사 구분

열사 : 나라를 위해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죽음을 맞이한 이에게 붙임. 유관순 열사

의사 :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무력적인 행동으로 항거하여 죽음을 맞이한 이에게 붙임.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지사 :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일하는 이로,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사용하는 단어. 김아무개 지사.

 

3. 유관순 열사의 생애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남

1920년 9월 28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 그녀의 나이 19세. 그러나 만으로 18세도 안 된 나이였다.

 

4. 아우내 장터

1919년 3월 1일에 전국적으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일제는 학생들의 만세 운동이 점점 극심해지자 3월 10일 휴교령을 내린다. 유관순이 다니던 이화학당도 휴교가 된다.

학교를 갈 수 없게 된 그녀는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고, 고향에서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준비하게 되고

4월 1일 병천시장에서, 아우내장터라고도 불린 곳에서 대한독립만세 운동을 벌인다.

천안, 청주 등 주변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쳤다.

 

5. 독립운동가의 길

아우내장터에서 울린 독립만세 소리. 그러나 만세 운동에 참가한 유관순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제의 총탄에 피살된다.

그녀의 집은 불에 타 버리고 만다.

유관순은 주동자로 잡히게 되고, 최종 5년형을 선고받는다. 그녀는 법원에서도 옥중에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1920년 4월 28일 영친왕(고종의 7째 아들)의 결혼 기념으로 인하여 특사령이 내려지는데, 이 때 유관순의 형량이 1년 6개월로 감형된다. 하지만 모진 고문과 일제의 잔인한 형벌로 인해 고문후유증이 극심했고, 안타깝게도 서대문형무소에서 9월 28일 옥사한다. 그녀의 나이 19세. 사실 만으론 18세가 되지 않은 꽃다운 나이였다. 그리고 더욱 슬픈 것은 그녀의 형기가 3개월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 얼마나 슬픈가.

 

대한민국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고,

2019년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6. 유관순 열사의 유언

"나라에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라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충남 천안에는 독립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유관순열사의 기념관이나 생가도 있으니, 독립기념관을 방문한다면 유관순열사 유적지도 한 번 들러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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