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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이육사

by 초롱초롱 2020. 4. 17.

1. 출생과 사망

1904년 4. 4. 경북 안동에서 태어남.

1944년 1. 16일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순국

 

 

2. 그의 가족과 그의 이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서 태어났으며 그는 6형제의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퇴계 이황의 13대손 이가호

이육사선생님의 외가와 친가는 모두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일제에 항거한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3. 그의 이름

호적에 기록된 이름은 이원록.

왜 그는 이육사가 되었을까?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그의 수인번호가 264번이었다. 이때 이육사를 빌려 자신의 호를 삼았다고 한다.

 

4. 독립운동

1925년 의열단에 가입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이 터지자 일제가 관련자를 모두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잡혀 투옥되었고 3년형을 선고 받음.(이 때 264번이란 미결수 번호였던 수감번호를 자신의 호로 선택)

1929년 출옥(대구지점 폭파사건을 벌였던 장진홍 의사가 붙잡혔고, 2년 4개월만에 석방됨)후 만주로 건너가 여러 독립운동단체에서 활동하며 독립투쟁을 함

1933년 귀국하여 시를 쓰는 일에 전념하며 이육사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함

이후로 청포도, 파초 등 서정성이 풍부한 시를 발표하였다.

그렇다고하여 그가 시만 쓴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독립투쟁에도 헌신하였으며,

그의 생애에 무려 17회나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는 펜으로도 싸웠고, 칼로도 싸운 지식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의 마지막 생애도 감옥에어서였으니, 참으로 그의 의지, 독립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느낄 수 있다.

 

 

5. 북경감옥에서 옥사하여.....

1944년 1월 16일 이육사 선생님이 별세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막내 동생이 북경으로 달렸으나, 이미 한줌의 재로 변하여 작은 상자에 그의 유해가 담겨있었다.

그의 유해는 서울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60년에 고향 땅으로 이장되었다.

 

그의 고향인 안동의 민속박물관 야외(월영교 근처)에 육사 시비가 있는데. 그 시가 바로 '광야'다

일제강점기. 어렵던 우리민족의 슬픈 시간들 속에 그가 꿈꾸던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을 바라며 쓴 시.

 

6.  -광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로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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