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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권기옥

by 초롱핑크 2020. 5. 22.

1. 권기옥 생애

1901년 1월 11일 출생

1988년 4월 19일 사망

 

2.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임시정부의 추천을 받아 중국의 항공학교에 1기생으로 입학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비행사

☆대한민국은 1968년 그녀에게 대통령 표창을, 1977년에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3. 비행사의 꿈을 꾸다

★1917년 권기옥 선생이 16세였을 때, 서울 여의도에서 미국의 곡예 비행사 스미스가 선보인 곡예비행을 보고 비행사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한 그녀는 1923년 중국의 운남육군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1925년 졸업 후 비행 적성 검사에 합격하여 비행사가 되었다. 조선의 여자로서는 최초의 비행사였다.

 

4. 일제에 항거한 삶

○1919년 숭의여학교 3학년 졸업해에 3·1운동이 일어났으니, 권기옥 선생님은 직접 태극기를 만들고 직접 거리에 나가 만세 시위를 하다 유치장에 갇히기도 하였다.

○만세 시위에 직접적으로 나선 것은 숭의여학교에 결성되어 있던 비밀결사대 송죽회의 일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3·1운동 이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 모금, 송금 일에도 활동하였고, 독립단원들의 은신처를 제공하는 일도 하였다.

○그러다가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였으며, 당시 임시정부에서 비행사 양성을 구상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임시 정부의 추천을 받고 중국에서 운영하는 항공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임시정부는 재정적으로 열악하였기에 항공대를 창설하기는 어려웠기에, 그녀는 10년 동안 중국의 공군에서 복무를 하였다. 1932년 상하이 전투에서 비행기를 몰고 일본군과 싸우기도 하였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되자, 충칭으로 떠났고, 충칭에서 국민정부의 육군참모학교 교관으로 활동하였다.

 

5. 광복 후의 삶

☆1950~1955년 국방위원회 전문위원

☆그 이후에는 재향군인회 명예회원, 부인회 고문 등을 지냈으며, 1988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녀는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되었다.

 

6. 비행사의 꿈을 가진다는 것

그녀가 비행사의 꿈을 꾼 1917년. 한국의 거리 풍경을 보면, 소달구지(수레)가 굴러가던 시절이었다.

한국에는 비행사를 키워내는 학교조차 없어 중국으로 망명한 그녀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이 여러번 거부되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임시정부의 추천서와 중국 운남성의 군부책임자인 탕자오 장군의 추천서를 얻어내어 입학을 할 수 있었다.

 

7. 그녀의 목표

"비행기 타는 공부를 마치면 폭탄을 안고 일본으로 날아기리라" 라는 꿈을 꾼 권기옥선생님. 비록 실현이 되진 않았지만 이 다짐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이 느껴진다.

 

그라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항공학교에서 여러차례 거절당하고, 공부를 배우는 과정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를 받았지만 그녀는 한국 여성 최초로 비행학교를 졸업하였다.

독립에 대한 갈망, 꿈을 이루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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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애벌레의 꿈 2020.05.25 22:21 신고

    권기옥 비행사처럼 하늘의 소망을 생각하며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어야 겠네요.
    항상 생각하는거지만 독립운동가와 하늘을 소망하는 우리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답글

    • 초롱핑크 2020.05.27 23:03 신고

      하늘을 비상한다는 것! 1910년대에는 정말 꿈을 꾸는 허상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이것을 이루어냈죠. 그것도 여자라는 신분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