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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이봉창

by 초롱초롱 2020. 2. 6.

1. 생애

190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32년 10월 10일 일본의 형무소에서 순국

 

2. 1932년 1월 8일. 도쿄. 일본의 심장에서 폭탄을 던지다.

 

★1931년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를 만나 "폭탄을 손에 넣으면 일본으로 돌아가 일왕을 죽여 조선의 독립을 촉진하겠습니다." 라는 뜻을 밝힌다.

 

★김구는 이봉창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를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킨다.

 

★윤봉길의 거사 직전에, 먼저 이봉창의 폭탄 사건이 있었다.

 

★이봉창. 1931년 12월 28일 도쿄신문에 1932년 1월 8일 일왕이 참석하는 관병식이 거행된다는 신문을 접한 후 거사를 결심하다.

 

★거사 당일, 일왕의 마차 행렬 가까이 간 그는, 첫 번째 마차 다음 두 번째 마차(일왕이 탔을 것이라 추측하고)에 폭탄을 던졌다.

 

★궁내대신의 마차가 뒤집어지고, 아수라장이 되었으나, 히로히토에게 타격을 가하지 못하였다.

 

★일본 군병들이 범인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을 잡아가자, "내가 범인이다."라며 이봉창은 직접 범인임을 밝히고 잡혀갔다.

 

★그리고 사형을 언도받고, 그해 10월 10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3. 한인애국단

★1930년대 항일운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가 만든 항일 운동 단체.

★일제의 주요 인물 암살을 목적으로 조직

★이봉창 의사가 도쿄에서 일본 국왕에게 폭탄을 투척

★이후 윤봉길의사가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 투척

 

 

4. 한인애국단 가입. 이봉창

★1925년에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인처럼 살았다.

★그러다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접고, 독립 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고, 1930년 12월 상하이로 건너갔다.

★다음해  1월 지사를 직접 찾아가 독립운동의 뜻을 내비쳤으나, 당시 간부들, 독립운동지사들은 이봉창을 수상하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마뒤, 김구를 만나게 되었고, 이봉창의 뜻을 확인한 김구가 자신이 만든 한인애국단에 가입시켰다.

 

 

5. 영향

★이봉창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을 중국의 언론들이 감탄하였고, 또 거사 실패를 안타까워하였다.

★이에 일본 정부가 중국 정부에 항의하면서, 중일 관계가 악화

★일본은 급기야 상하이를 침공하는 상하이사변이 일어남.

★상하이 승리 기념 행사 때,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이 일어났고,

★이것을 중국 총통이 감탄하면서, 임시정부가 활력을 얻게 되었고, 나아가 한국광복군까지 창설하게 됨.

 

 

 

 

 

이봉창 의사의 거사는 임시정부의 승인으로 이루어진, 한국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독립을 이루기 위해 개인의 죽음을 아까워하지 않은 이봉창의사.

그리고 거사 이후, 엉뚱한 사람이 잡혀갈 때,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내가 범인이다."라고 했던 의연한 모습.

법정에서도, 그의 배후에 김구선생님, 임시정부가 있음을 밝히지 않았고, 일본식 이름을 대면서 수사에 혼란을 주기도 했던 그의 대범함은. 정말 작은 것에 신경을 쓰는 나로선 배울 점이 너무 많다.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많은 독립운동가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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