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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교회-일곱우뢰의 비밀

십자가, 하나님의교회에서 완벽 정리

by 초롱초롱 2024. 7. 25.

십자가는 우상일까요? 아니면 교회의 상징일까요?
십자가에 대해 완벽하게 정리해 드립니다. 5분 정도의 글입니다. 
제대로 하나님을 믿고 싶다면, 천천히 이 글을 읽어보십시오.
 

1. 십자가 형상의 기원

십자가는 기독교 이전에도 여러 고대 문명에서 종교적 및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며 사용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십자가가 앙크 십자가, 타우 십자가입니다.
 
앙크 십자가는 타원형의 고리가 달린 모양의 십자가, 타우 십자가는 ‘T’ 모양의 십자가입니다.
 
앙크 십자가는 고대 이집트에서 생명과 영생을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었고, 이집트 신들의 손에 들려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출처: 픽사베이

 
타우 십자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숭배된 신, 태양신 담무스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담무스의 이름 첫 글자인 ‘T’와 타우 십자가가 연관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에스겔 8:1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성경 에스겔 8:14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담무스를 위해 애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담무스의 숭배가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즉 십자가는 이집트의 신 또는 태양신 담무스의 상징이었지, 결코 그리스도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성경적인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서,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변모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십자가를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여긴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십자가"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리스도교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 고대민족 사이에서 종교적인 상징으로 쓰이고 있었다.
예를 들면, 바빌로니아인이나 칼데아인은 하늘의 신인 아누의 상징으로서 등변 십자가를 사용하였고, 고대 이집트인은 영생의 상징으로서 바퀴가 달린 십자가를 사용하였다. 또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폴론신이 십자형의 홀을 가지고 있고, 게르만신화에서는 토르신이 십자 모양의 해머를 가지고 있다.-

 

Vine's 신구약 성경용어 주석사전, W.E.바인, Thomas Nelson Publishers, 1996년
교회가 사용한 두 개의 나무로 된 십자가의 형태는 고대 갈대아(Chaldea)에서 기원되었고 그 나라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한 국가에서 담무스(Tammuz)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그 이름의 머리 글자인 신비적인 타우 모양임)

 
 

2. 로마의 사형틀

십자가는 고대에 종교적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사형틀로 사용되었습니다. 로마 제국 이전, 페르시아, 카르타고, 헬레니즘 세계 등에서 십자가가 사형틀로 사용되었습니다.
 
페르시아에서는 나무 기둥에 사람을 묶거나 못 박는 형태였습니다. 기둥이 일자형이기도 했고, 십자가 형태이기도 하였습니다. 다리우스 1세(B.C. 522~486년) 시기에 정치적 반대자들을 처형하는 십자가형 기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카르타고에서는 구체적 형태에 관한 자료가 제한적이지만, 일반적으로 나무 기둥에 사람을 매다는 방식이었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에서는 십자가는 주로 두 개의 나무 기둥을 교차하여 만든 형태였습니다. T자형, X자형, 전통적인 십자가형 등이 사용되었으며, 빈번하게 처형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사형틀이 교회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 그 어디에도 사형틀을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여긴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Baker’s 신학사전, 도서출판엠마오, 491쪽
십자가가 사형틀로 사용된 것은 헬라인과 로마인들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이것을 또한 페니키아인과 페르샤인과 카르타고인들에게서 물려받았다.

 
 

3. 초대교회 성도들이 느낀 십자가

십자가는 사회적 수치와 굴욕을 동반하는 처형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극도로 혐오하고 몸서리치는 도구로 여겼습니다.

Baker’s 신학사전, 신성종 역, 엠마오, 1996년, 491쪽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초대교인들에게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으므로 십자가를 심미적으로 미화시킬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습니다.
몸서리치게 만드는 십자가가 어찌 교회의 상징이요, 그리스도의 상징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온전히 따랐던 초대교회는 십자가를 결코 교회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4. 놋뱀 사건으로 십자가가 우상이 될 것을 예언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하였는데, 인자가 들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려서 운명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들려서 운명하셔야 할까요?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민 21:4~7절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길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게 하셨습니다.
불뱀으로 죽게 된 백성들은 뒤늦게 후회하며 하나님께 회개를 하였습니다.
 
민 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고, 그것을 쳐다보면 살게 된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사건입니다.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고, 그것을 쳐다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게 되었습니다.
쳐다만 보았더니, 치유가 되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는 왜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라고 하셨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놋뱀 없이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유해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놋뱀을 만들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당신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권능이 있고, 정녕 그 약속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우쳐주기 위해서 놋뱀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이후, 놋뱀을 다시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당연히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히스기야 시대까지 800년간 놋뱀을 만들어 세우게 됩니다.
 
왕하 18:3~4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놋조각)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는 놋뱀을 부수고, 그것을 ‘놋조각’이라고 불렀습니다.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들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형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살지 않는 깊은 산속이라든지, 외딴 곳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피를 흘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의 죄를 담당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당신의 희생의 공로를 나타내시기 위해, 만인이 볼 수 있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즉 십자가는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처럼, 당신의 희생을 온 천하에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신 도구였습니다.
 
“광에에서 뱀을 든 것같이” 라는 말씀 속에는 놋뱀을 숭배한 역사처럼, 십자가도 우상숭배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놋뱀을 한시적으로 사용하셨을 뿐인데,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히스기야 시대까지 놋뱀을 세워 분향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희생을 만천하에 선포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한시적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성도들은 십자가를 교회 탑 위에 세우고, 교회의 상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놋뱀은 히스기야의 말대로 그저 ‘느후스단’, 즉 놋조각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는 ’나무 조각‘에 불과합니다.
 
놋뱀 사건 이후에 더 이상 놋뱀을 세워선 안 됩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조각을 히스기야 시대까지 세우고 분향하였습니다.
오늘날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수백년간 십자가를 세우고 분향하고 있습니다.
 
 

5. 교회 내부와 외부에 세워지게 된 과정

십자가는 콘스탄틴 시대부터 교회의 상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Baker's 신학사전, 신성종 역, 엠마오, 1996년, 491쪽.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교회사, 김의환 감수, 세종문화사, 1992년
그 밖에 콘스탄틴의 업적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고래의 풍속을 개혁하였다. 즉 십자가의 형벌을 폐지하고

 
콘스탄틴은 십자가의 형벌을 폐지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십자가의 형벌이 사라지면서 십자가에 대한 혐오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콘스탄틴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콘스탄틴은 312년 10월 28일에 벌어진 밀비우스 전투를 앞두고 환영(꿈)을 보았는데, 하늘에서 빛나는 십자가 문양을 보았고, 십자가 문양을 군대의 방패에 새기고 전투에 임해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콘스탄틴 시기부터 십자가에 상징적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혐오감이 사라졌다고 해서, 콘스탄틴 시대부터 당장에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여기고, 십자가를 교회 내부나 교회 탑에 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십자가가 곧바로 교회 내부에 들어오거나, 교회 탑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십자가는 이방종교의 상징물이었고, 사형수들을 처형하는 사형틀이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교회 내부를 장식한 것은 431년, 교회 탑에 세워진 것은 568년경이 되어서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말만 들어도 몸서리쳤던 십자가가 교회 탑에 세워지기까지 500년 이상 걸린 것만 보더라도,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여기는데 상당한 거부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종교개혁에서 바라본 십자가

개신교를 탄생시킨 종교개혁자들도 십자가를 우상으로 여겼습니다.

교회사 전집 제8권 스위스 종교개혁 75~76쪽, 크리스챤다이제스트 발행
-교회와 국가의 권력자들이 파견한 대표단들이 건축가, 석공, 목수를 대동하고 지켜보는 가운데 시내의 교회들에서 성화, 유물, 십자가 고상, 제단, 초, 다른 모든 장식물들이 제거되었고-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주로 활동했던 츠빙글리는 로마 카톨릭식 예배를 폐지함과 동시에 십자가를 우상으로 여기고 배격하였습니다. 십자가 형상물을 배격하는 사상은 당시 유럽과 북미의 개신교에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기독교강요, 1권 1부 11장 10항, 장 칼뱅 지음
-인간은 가시적인 형상을 만들자마자 하나님의 권능이 그 형상에 부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형상화 작업이 끝나면 그 형상에 예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카톨릭에서는 ‘형상을 만들 뿐, 결코 우상숭배하지 않는다’고 강변하였는데, 이에 대해 칼뱅은 가시적인 형상을 만들 때, 인간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여 우상숭배가 이루어지는지 설명하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개신교에서 십자가에 대해 과거 카톨릭의 변명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7. 십자가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

오늘날 자칭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가장 눈에 잘 보이는 거실에 걸어두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복이 온다는 심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걸어두어야만 함께 하시는 걸까요?
 
십자가를 자동차에 걸어두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한다는 심리 때문입니다.
 
십자가로 악마를 물리치는 모습을 표현한 영화는 어떤가요?
십자가에서 어떤 요술적인 힘이 나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왜 더 크게 만들고, 십자가를 왜 더 비싼 금과 보석으로 치장할까요?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나, 사회적 분위기를 살펴보고서도
십자가를 세우는 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8. 하켄크로이츠

독일어로 ’갈고리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나치 독일의 만행으로 인해 하켄크로이츠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에서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고, 현재는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이 금지되거나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습니다.
만약 독일 나치가 다른 형태의 십자가 문양을 나치당의 상징으로 사용했다면, 지금 독일 교회는 하켄크로이츠 문양을 교회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한 문양 조차도 역사적 사건에 의해 언제든지 금기시될 수 있는데, 어찌 십자 모양의 십자가가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상징이 될 수 있겠습니까?

출처:픽사베이

 

9.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 숭배란

출 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
십자가가 우상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보다 더 확실한 말씀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십자가는 종교적인 이유로 세워진 형상입니다. 즉 우상숭배입니다.
 
 

10. 십자가 변명들

마 10:38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마 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성경에 십자가라는 단어만 나오면, 십자가를 세워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우상숭배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이 말씀은 십자가를 세우란 소리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이겨내라는 뜻입니다. ’자기 십자가‘라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고난과 삶의 역경을 이겨내면서 믿음을 따라오라는 말씀입니다. 어찌 이 말씀을 십자가를 세워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십자가를 세워도 된다는 성경 말씀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십자가를 세우지 않습니다.
담무스의 상징 도구를 교회의 상징 도구라고 변명하지 않습니다.
흉악한 살인자들을 처형한 사형틀을 그리스도의 상징이라고 우기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하나님의 교회에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