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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윤봉길

by 초롱초롱 2020. 1. 29.

독립운동가-윤봉길.

누구나 역사를 공부하면 한 번쯤 들어봤을 독립운동가이다.

그러나 세세히, 윤봉길의 폭탄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1. 윤봉길의 출생과 홍커우 공원(현재의 루쉰 공원)에서의 폭탄투척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서 태어났다.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이름은 윤우의이다.

 

그리고 1930년 3월 6일

"대장부가 집을 떠나서 뜻을 이루기까지는 절대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글을 쓰고 집을 떠난다.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을 향해 물병모양의 폭탄을 투척한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일본 고위 인사들이 중상을 입었고, 중국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이 사망하였다.

 

 

2. 윤봉길의 사망

폭탄 투척이후 바로 일본군인에게 붙잡혀 모진 구타를 당한 후, 그 이후 말못할 고문이 이어졌다.

1932년. 5월 25일 윤봉길은 사형을 언도받는다.

그해 11월 18일에 일본 형무소로 이감되고,

12월 18일에 다시 가나자와형무소로 옮겨진 후, 19일에 사형집행(총살형)으로 순국하였다.

25살의 젊은 나이. 꽃다운 나이에 대한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젊은이였다.

 

 

3. 침체된 독립운동에 불을 지피다.

1919년 3.1 운동으로 민족의 독립을 꿈꾸던 이들이, 임시정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웠다. 그리고 끝없이 독립을 향한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승승장구하였고, 독립은 점점 더 묘연해졌다.

일본은 문화통치라는 기만정치로 대한민국을 점령하였고, 만주지역에서는 일본군의 우월한 군사력 앞에, 무력항쟁도 점점 열기가 가라앉았다.

 

일본은 만주점령 이후, 중국까지 넘보며, 상하이까지 침공하여 상하이를 점령하였다.

일본은 상하이 점령 기념과 더불어 일왕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상하이에서 전승축전을 개최하기로 하고 날짜를 4월 29일로 하기로 보도하였다.

 

이렇게 독립에 대한 활동이 침체에 빠져가고 있었고, 임시정부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이다.

일본은 정말 승승장구하던 때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 반전을 꾀한 사건이. 바로 윤봉길 의사의 의거였다.

이를 기점으로 새로이 독립을 향한 활력을 찾게 되었다.

 

 

4. 거사 당일 아침

백범 김구 선생과 시계를 바꾼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시계가 낡았고, 윤봉길 의사의 시계는 새것이었다.

시계를 바꾸자고 제안하였다. 김구가 거절을 하자, 윤봉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이후로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저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이제 한 시간 밖에는 쓸 수 없습니다."

 

두 시계는 74년이나 지나서 서로 한 자리에서 만났다. 비록 그들은 서로 더 이상 만나지 못했지만.

 

 

 

5. 중국의 장제스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사나이가 했다.-

 

윤봉길의 거사로,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좋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당시 중국을 지배한 국민당의 총통이었던 장제스가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했다."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이일로 인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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