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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예언들

요한계시록 4장 예언. 요한계시록 4장의 예언

by 초롱초롱 2024. 1. 18.

요한계시록 4장의 예언을 알아보겠습니다.

예언을 차근차근 살피면서, 반드시 다시 오리라 약속하신 예수님을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거짓선지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거짓된 교회에서 얼른 나오시기 바랍니다.

 

 

1. 만물이 주의 뜻

요한계시록 4장 11절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세상 만물이 주의 뜻대로 창조되었습니다. 만물이 아무런 뜻 없이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상 만물을 창조한 역사는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바로 창세기입니다. 즉 창조의 역사가 기록된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언급하셨습니다. 다음 구절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4~35절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이 있으며, 비유의 말씀으로 기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창세기의 기록이 단순한 사실적 기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일 동안 만물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하셨다는 창세기의 기록은 비유의 말씀이며, 여기에는 많은 것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즉 사실적 장면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창세기의 기록이 사실적 장면이라면 요한복음 5장 17절의 내용은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안식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 일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창세기의 기록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에는 무엇이 감추어져 있을까요? 또한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에 어떤 뜻을 감추어 두셨을까요? 이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2. 육일 창조의 역사는 육천년 구속사업

육일 창조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속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쓴 구원의 설계도와 같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육일 동안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육일 동안 이루어진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육천년 동안 이루어가시는 구원의 역사를 간략하게 나타낸 비유의 말씀입니다.

 

먼저, 일곱째 날 안식일에 관하여 다음 구절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요한복음 5장 17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히브리서 4장 9~10절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

요한계시록 20장 2절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1. 성경에서 하루는 천년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루가 천년이라면, 육일창조는 육천년 창조를 의미합니다. 

2. 창세기에서 분명 하나님께서 육일 창조를 끝내고 안식을 하셨는데,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계속 일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계속 일하고 계십니다. 아직 안식이 도래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3. 진정한 안식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아직 창조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4. 마지막 심판의 날, 사단은 일천년 간 무저갱에 갇히게 되고, 하나님의 백성은 일천년 간 왕노릇을 하게 됩니다.

 

더 많은 구절이 있으나, 핵심적인 위의 네 구절만 살펴보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창조 사역의 역사 가운데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계속 일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안식이 아직 도래되지 않았으며,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안식은 창조의 역사가 끝나는 날, 천년 안식으로 도래됩니다. 이 때 사단은 일천년 동안 결박당하여 무저갱에 갇히게 됩니다. '천년'이라는 시간적 개념을 반복해서 언급한 이유는 '하루는 천년'이라는 성경적 해석을 토대로, 육일 창조의 역사가 육천년 구속사업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육일 창조 후에 맞이하는 일곱째 날 안식일이 육천년 구속사업 이후에 도래되는 영원한 안식 천년을 예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습니다. 창조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창조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즉 창세기에 기록된 안식일은 단순한 사실적 기록이 아닙니다. 제 칠일에 안식하셨다는 말씀은 영원한 안식 천년이 도래될 것을 알려주는 예언이자 비유의 말씀입니다.

 

영적 창조의 역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육일 창조의 역사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육일 창조에 관한 말씀은 육천년 영적 창조의 역사를 나타낸 설계도와 같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마지막 구속의 역사가 모두 마쳐지는 날, 안식일이 예표하고 있었던 영원한 안식 천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일곱째 날은 안식 천년을 알려주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이루어진 창조의 역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3.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의 의미

첫째 날에는 빛을 만드셨습니다. 빛은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입니다.(요1:1, 고후4:6). 육신으로 해석한다면 태양빛이겠지만, 성경적으로는 생명의 빛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빛을 만드셨던 역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을 아는 진리의 빛을 비추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언적 시대는 아담에서 노아때까지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을 믿은 자들은 구원받았고, 빛을 깨닫지 못한 자들은 노아 홍수로 멸망하였습니다.

 

둘째 날에는 물 가운데 궁창을 만드시고 물을 상하로 나뉘게 하셨습니다. 예언상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계17:15)'입니다. 하늘의 물은 구름인데 이는 구원받을 거룩한 성도들을 표상하며, 아래의 물은 구원받지 못하는 모든 백성들을 표상합니다. 이 예언은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의 역사로서 노아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서 바벨탑을 쌓다가 저주로 혼잡 방언을 받아 가지고 지면으로 흩어짐으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셋째 날에는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바다를 이루시고 드러난 땅에 각 종류의 수목이 나게 하셨습니다. 바다는 전 세계 인류이며, 각 종류의 수목도 각 인류를 의미합니다(눅 23:21). 이 예언은 아브라함에서 모세까지의 역사로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생애를 사는 동안 각 나라가 생겨났습니다.

 

넷째 날에는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넷째 날의 역사는 모세시대로부터 예수님까지의 기간입니다. 이 때 성문화된 구약과 신약이 이루어졌습니다. 구약은 작은 광명이요, 신약은 큰 광명입니다. 육신으로 해석한다면 큰 광명은 해요, 작은 광명은 달입니다. 성경에서 해는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는 밤 하늘 달빛 아래서 신약인 태양빛의 반사로 땅에 비취어 거울의 역할을 하여 아침 태양 즉, 그리스도의 빛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넷째 날에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어졌다'고 하였는데, 모세 때에 와서 율례와 규례와 절기와 안식일 등을 정한 것으로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바다에 고기와 공중에 새들을 번성케 하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바다 생물과 공중의 새 종류를 만드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예언으로 해석한다면 바다의 짐승은 마귀를 뜻합니다(계13:1, 단7:3). 공중의 새도 마귀를 표상합니다(마13:3). 다섯째 날의 예언시대는 예수님 십자가 이후 박해의 시대를 거쳐 1260년간의 종교 암흑세기를 의미합니다(계12:6). 이 기간 교회는 광야로 도망하여 1260년간 사막, 산중, 동굴 등을 전전하며 비참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마귀로 표상된 바다의 짐승과 공중의 새가 맹위를 떨친 시기입니다.

 

여섯째 날에는 육축과 모든 짐승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끝 시간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오늘 살펴보는 가장 핵심 내용이 바로 여섯째 날의 역사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여섯째 날의 역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담은 어떤 뜻으로 창조되었으며, 하와는 어떤 뜻으로 창조되었을까요?

 

※참고로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의 역사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교회에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성경구절이 위 단락에 생략되어 있으며,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교회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악한 영들이 만들어낸 거짓된 정보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를 훼방하는 자들은 지금도 온갖 거짓말로 하나님의교회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마치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훼방했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들처럼 말이죠. 거짓된 교회에서 얼른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섯째 날에 창조된 아담과 하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4. 아담은 오실 구원자를 표상

로마서 5장 14절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고린도전서 15장 45절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아담은 오실 자를 표상한 인물입니다. 아담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기서 오실 자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실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아담은 '마지막 아담'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한 '살려주는 영'이라고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 영혼을 살려주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다시 말해 아담은 우리를 살려주기 위해 오실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육일 창조의 역사에서 아담은 언제 창조되었습니까? 바로 육일째, 가장 마지막 끝날에 창조되었습니다. 이는 육천년 창조사역의 마지막 때에 아담이 등장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려주기 위해 넷째 날에 등장하셨습니다. 넷째 날에 해와 달을 창조하셨는데, 해는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새 언약을 뜻합니다. 새 언약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넷째 날에 등장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조의 역사에서 아담은 넷째 날이 아니라, 여섯째 날에 만들어졌습니다. 육일째에 아담이 창조되었으므로, 아담으로 표상된 아버지 하나님은 육천년 마지막 때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아담만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함께 하와도 창조하셨습니다. 하와는 어떤 뜻으로 창조되었을까요?

 

 

5.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아담과 하와

창세기 1장 26~27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3장 20절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생명)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나의 형상을 따라 나의 모양대로 내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단수(1명)의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수(여러명)의 표현인 우리라는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모델로 하여 창조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남성적 형상과 여성적 형상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란 단어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에는 여성적 형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바로 어머니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이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복수의 표현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분이십니다.

 

여기서 아담은 아버지의 형상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므로, 아담을 통해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와 모습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와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바로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와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3장에는 하와라는 이름의 뜻이 '생명'이라고 알려줍니다. 하와의 이름은 생명입니다. 하와의 이름을 생명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이 세상 만물을 보더라도, 생명은 모두 어머니를 통해 잉태되고 탄생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영혼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생명도 어머니를 통해 주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와를 만드신 뜻이며, 만물의 이치를 통해 알려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두 분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다음 단락에서 더 정확히 알아보겠습니다.

 

 

6. 아담과 하와가 등장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19장 7절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요한계시록 21장 9절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과 신부'가 등장합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육천년 하나님의 구속사업의 마지막 장면을 담은 요한계시록 22장에는 생명수를 주시는 분이 두 분, 즉 '성령과 신부'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누구이며, 신부는 누구일까요? 

 

먼저 성령이 누구이신지 알아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성령과 신부', 19장에는 '어린양과 아내', 21장에는 '어린양과 신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연결해서 읽으면, 어린양과 아내 = 어린양과 신부 = 성령과 신부로 연결됩니다. 즉 '어린 양과 신부'는 곧 '성령과 신부'입니다. 여기서 '어린 양'이 곧 '성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요1:29).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어린 양은 당연히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장에 등장하는 성령은 다시 오실 재림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아담은 마지막 아담으로 우리 영혼을 살려주기 위한 뜻을 담고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육일 창조의 역사에서 가장 마지막 날 창조되었습니다. 이처럼 아담으로 표상된 아버지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생명수를 주기 위해 등장하십니다. 그 분은 다시 오시는 재림 그리스도, 재림 예수님이십니다. 육천년 구속사업의 마지막 때, 재림 예수님께서 나타나신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역사 속에 그 뜻을 담아 두셨던 것입니다.

 

물론 성령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신부, 즉 아담과 하와가 등장합니다. 하와는 누구일까요?

 

 

7. 하늘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

요한계시록 21장 9~10절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갈라디아서 4장 26절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

요한계시록 19장 7~9절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어린 양의 아내이신 신부를 보여주겠다던 천사가 무엇을 보여주었습니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하늘의 예루살렘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신부가 하늘의 예루살렘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의 예루살렘은 무엇을 비유한 말씀일까요?

 

갈라디아서에는 하늘의 예루살렘이 '우리의 어머니'라고 증거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의 어머니를 비유한 말씀입니다. 즉 어린 양의 아내인 신부는 하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 하나님입니다.

 

간혹 신부를 성도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데, 성도는 결코 생명수를 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하늘의 예루살렘이 되어 이 땅에 내려온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9장 7절에는 혼인 잔치에 성도들을 초청하는 분이 어린 양과 신부라고 증거되어 있으며, 초청을 받은 '청함을 입은 자들'이 성도라고 정확하게 증거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은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는 입장, 즉 하객입니다. 우리를 혼인 잔치, 즉 생명의 잔치에 초청하시는 분은 오직 구원자이신 하나님뿐이십니다. 따라서 신부는 하나님이십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성령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이 땅에 나타나실 어머니 하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하늘의 예루살렘이 이 땅으로 내려오더라'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계21:2, 계21:10). 하늘에서 이 땅에 내려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시 말해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는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요?

 

 

8. 생명수를 주기 위해 등장하셨던 예수님

아모스 8장 11절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요한복음 4장 1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7장 37~38절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그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물이 없는 갈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입니다. 성경에서 물을 먹지 못하는 것을 영적 기갈이요, 영적 목마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누가 이 땅에 임하셨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땅에 육체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오셔서 뭐라고 외치셨습니까?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영생의 샘물이라", "목마르거든 와서 마시라!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라고 외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의 모습으로 오셔서, 외치셨습니다. "목마른 자들아, 와서 마시라, 영생의 생수를 마시라" 라고 말이죠. 그런데 요한계시록 22장에는 동일한 예언이 다시 한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목마른 자들아 오라! 와서 생명수를 받으라!"

여러분! 성령이신 재림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오실 것 같나요? 또한 신부이신 예루살렘, 즉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실 것 같나요? 바로 이천년 전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아직도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속아서, 이 땅에 오신 성령과 신부를 배척만 하고 계실 겁니까?

 

진리 말씀을 가지고, 영적 기갈에 빠진 인류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 마지막 육천년 끝자락에, 아담으로 표상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습니다. 또한 하와로 표상된 어머니 하나님, 생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와, 즉 하늘 예루살렘으로 비유된 어머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 오셨습니다. 성령과 신부께서 오셔서 진리 교회인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생명의 진리를 드러내셨습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의교회로 달려오십시오. 당신이 기다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